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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계발/지속적인 성장

성장을 위해 한 발 더 나아가기

by 한발자국앞으로 2022. 10. 12.

도전 그리고 좌절

우리는 다양한 일에 도전하고, 한계에 부딪혀 좌절하며, 포기하곤 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성취한 것보다, 마음에 품었다가 내려놓은 것이 더 많을 것입니다. 온라인으로 유통되는 숱한 성공 스토리는 과정 속의 작은 실패, 혹은 한계를 뛰어넘는 노력, 끝내 성공하지 못한 많은 실패담을 가려버립니다. 그래서 도전의 당사자가 되는 상황에서 우리는 우리의 한계선을 너무 앞에 그어놓고, 더 이상 어쩔 수 없다는 핑계 속에 포기를 선택하곤 합니다.

 

<h2> - 키네 완투승 직전, 아다치 미츠루 作 이미지
<h2> - 키네 완투승 직전, 아다치 미츠루 作

 

한계의 두 가지 유형

지금의 도전에서 내가 정말 도달할 수 있는 정도가 어디인지는 아무도 알 수 없습니다. 그저, 내가 성취하고 싶은 것을 먼저 달성한 사람을 바라보며, 그 너머까지 가는 사람이 있다는 것으로 우리도 어쩌면 그 어디쯤까지는 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품어볼 뿐입니다. 문제는 그런 북극성 같은 사람, 혹은 예시가 있더라도, 거기까지 도달하는 '나의 여정'에는 여전히 많은 장애물이 존재하고, 우리는 여러 상황에서 한계를 마주하게 됩니다.

 

거대한 벽으로써의 한계

우리가 마주하는 다양한 한계를 크게 두 가지로 나눠볼 수 있습니다. 그 첫 번째는 거대한 벽으로써의 한계입니다. 이는 지금 나의 역량이 그 벽을 넘어갈 수 없다는 좌절감을 안겨주는 한계입니다. 자금의 부족, 힘의 부족, 체력의 부족 등 물리적으로 그 실체가 드러나는 경우도 있고, 부족한 외국어 능력, 무엇인가를 다루는 기술의 부재, 특정 분야 지식의 부족 등 명확한 형태를 띠고 있진 않지만 역량이 부족하다는 것을 그 순간 느낄 수 있는 한계들이 이 유형에 속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한계라고 명명하는 많은 것들이 이 유형의 한계입니다.

이런 한계들은 그 장벽을 뛰어넘을 상황의 변화를 만들어내면 극복할 수 있습니다. 반대로 말하면, 그런 변화가 있기 전까지는 의지나 열정만으로 극복할 수 없는 한계이기도 합니다. 장벽의 경계 지점이 명확하고, 극복하는 방법 또한 비교적 쉽게 알 수 있기 때문에 이런 한계를 어떻게 대할 것인가 하는 것은 개인의 선택에 달렸습니다.

 

시간 및 거리로써의 한계

두 번째 유형은 시간 및 거리로 표현되는 한계입니다. 대부분의 도전은 일정 기간 이상의 꾸준함을 요합니다. 목표까지 도달하는 것을 먼 길을 가는 것에 비유한다면, 현재 상태에서 목표 지점까지의 거리를 채우는 일을 도전의 과정으로 볼 수도 있습니다. 이때, 목표 달성을 위해 필요한 기간만큼 버텨내지 못하는 것, 혹은 목표 지점에 닿을 정도로 오래가지 못하는 것이 우리를 좌절시키는 또 다른 우리의 한계입니다. 우리를 더 자주 포기로 몰아넣지만, 한계라고 잘 인지하지 못하는 한계가 바로 이 유형의 한계입니다.

우리는 그저 우리의 끈기 부족, 꾸준함 부족을 탓합니다. 하지만, 충분한 시간을 지속하지 못하는 것은 우리가 한계에 부딪혔기 때문입니다. 하루 더, 한 번 더 할 수 있다는 믿음이 사라졌거나, 그렇게 한 번을 더 쌓는다고 한들 원하는 결과가 나올 것 같지 않다는 생각이 들면 '나는 안 되는 건가', '내가 잘못하고 있나'와 같은 생각을 하며, 포기의 마음을 키우게 됩니다. 결국, 이 유형의 한계는 나의 마음이 회의에 빠져 만들어내는 한계입니다.

 

한계를 마주한다면

한계에 부딪혔을 때, 그 한계가 거대한 벽을 마주하는 것이라면 비교적 판단이 쉽습니다. 현실을 냉정하게 바라보기만 하면 됩니다. 꼭 원하는 것이라면 벽을 넘을 전략을 짜야할 것이고, 의지에 비해 벽이 너무 높다면, 나중에 다시 도전할지언정 이번에는 물러서는 것이 맞겠죠.

더 이상 나아가지 못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는 조금 더 복잡합니다. 한 발자국을 더 나아가거나, 돌아서는 것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데, 한 발자국을 더 딛는다고 해서, 결과가 나오리란 보장이 없기 때문입니다. 한 발자국을 더 딛겠다는 결심은 단순히 그 발자국의 무게만 고려하는 것이 아닙니다. 한 발자국을 더 디딜 것인가에 대한 고민은 영원히 결과 없이 나아가야 하는 선택지부터, 바로 다음 순간에 원하는 것을 성취하는 경우까지를 놓고, 확률을 가늠하고, 기댓값을 계산하는 복잡한 행위인 것이죠. 그것을 의식하고 있든 아니든 말입니다.

문제는 그 모든 경우를 상상할 수도 없고, 각각의 경우가 일어날 확률은 더더욱 알 수 없으며, 그래서 기댓값 계산은 전혀 이성적으로 이루어질 수 없다는 데 있습니다. 그즈음에서는 이미 상당히 지쳐있을 것이고, 마음속에는 부정적인 감정이 가득할 테니, 본능적으로 잘 될 경우보다 그렇지 않을 경우에 가중치를 주고 있을 것이고, 그렇게 우리는 한계를 극복하기보다는 이쯤에서 그만두고 나오기를 선택하게 됩니다. 그리고, 마음이 조금 여유로워지고, 도전의 고단함이 잊힐 즈음 너무 일찍 돌아 나온 것이 아닌가, 한 발쯤은 더 갈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생각을 하게 되죠.

 

마지막 한 번 더 쥐어짜기

운동을 하다 보면 분명 거의 한계 지점이라고 생각했는데,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하다 보면, 생각보다 더 많은 양을 소화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헬스장에서 기구를 들어 올릴 때, 장거리 달리기나 수영, 자전거를 탈 때, 혹은 산을 탈 때도 그런 상황을 마주하곤 합니다. 가장 극명한 경우는 헬스장에서 PT를 받을 때입니다. 트레이너가 없다면, 절대 들 수 없는 무게를 들고, 혼자서는 할 수 없을 만큼의 횟수를 채웁니다. 그저, 트레이너의 걸쳐놓은 손 하나에 의지해 해내는 것이죠.

언제 그만두어야 하는지를 잘 판단하는 것은 분명 중요합니다. 우리가 하는 대부분의 도전은 한 번에 모든 것을 걸고 승부를 보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가끔은 한계 지점이라고 생각하는 그 순간보다 딱 한 발만 더, 딱 한 번만 더 온 힘을 쥐어짜서 나아가 보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렇게 한 발씩 쌓다 보면, 어느새 목표에 도달했을 수도 있고, 자신의 한계가 생각보다 멀리 있다는 것을 깨달을 수도 있습니다.

설령, 끝내 몇 발자국을 더 딛다가 포기하게 되더라도, 그 앞에서 멈춰 선 것과 더 나아간 것은 스스로를 인식하는 데 많은 차이를 줍니다. 스스로를 열 번 했던 사람으로 기억하는 것과 열한 번은 했던 사람으로 기억하는 것, 5km를 나아간 사람으로 기억하는 것과 7km를 나아간 사람으로 기억하는 것은 다릅니다. 비록 그게 실패의 과정이었다고 하더라도 말입니다.

근육을 키우는 과정에서는 더 할 수 없을 것 같을 때 한 번 더 하는 것이, 적당한 선에서 멈추고 한 세트를 더 하는 것보다 근육 성장에 도움이 된다고 합니다. 이것은 비단 몸에 있는 근육에만 해당하는 말이 아닙니다. 우리의 끈기, 꾸준함, 의지 등도 일종의 근육이라, 한계에서 몇 발자국 더 나아가는 것이 다음의 도전 - 그것이 동일한 분야든 새로운 분야든 - 을 함에 있어서 든든한 기초 체력이 됩니다.

 

마무리하며

우리는 어떤 경우에도 실제 우리의 한계를 마주할 수 없습니다. 정확하게 한계에 부딪혀서 멈출 수도 없고, 그걸 넘어섰다면, 그건 이미 한계가 아니기 때문이죠. 결국 우리가 스스로 한계를 긋는다면, 딱 그 안에 갇힐 뿐입니다. 아주 미세하게나마 분명 한계는 그것보다 더 멀리 있을 텐데 말입니다. 결국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한계라고 느끼는 순간 매번 딱 한 발자국씩만 더 디뎌보는 것입니다. 그렇게 매번 한 발자국을 넓히는 것을 통해 다음 도전에서는 더 멀리까지 나아가는 것만이 우리가 더 높이 성장하는 방법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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